2011년 11월 22일

빌 게이츠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필자는 줄곧 비즈니스는 전쟁이 아니며, 제로섬 게임도 아니라고 얘기해 왔다. 주주들에게 돈을 안겨줄 수만 있다면, 그 사업은 성공적인 것이다. 굳이 경쟁업체를 죽일 필요 없이, 그저 번창하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뛰어난 사업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은 한 사람의 위인이 나타나면, 다른 한 사람은 악역을 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과 업적을 찬양하는 동안, 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빌 게이츠는 완전히 잊혀진 듯 하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지난 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맥스웰 웨슬의 글을 읽고 나서였다. 웨슬은 하버드 경영 대학의 혁신주의 두뇌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성장 및 혁신 포럼(Forum for Growth and Innovation)의 연구원으로, 그의 사설의 제목은 “우상화해야 할 사람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빌 게이츠”였다.
 
우상화까진 잘 모르겠지만, 빌 게이츠가 제 3세계 질병과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사재를 털어 기부한 수십 억 달러가 아이패드보다 더 중요하면 중요했지, 덜 중요하진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가? 아! 알았다, 착한 척은 그만 하겠다. 아이패드가 더 중요한 건 맞다. 그 기부 행위가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깎아 내릴 순 없을 거다. 그건 단지 관점과 가치관의 문제니까.
 
하지만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은, 잡스가 두 번째로 애플의 CEO 자리를 맡으며 이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동안, 그가 빌 게이츠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아니었다면, 아이팟이나 아이폰, 아이패드는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품이 전부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애플과 애플의 제품은 말 그대로 그저 제품일 뿐이다. 물론 삶에 활력을 주는 아름답고, 재미 있는 제품들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건 월트 디즈니가 사람들에게 주었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인필드”에서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게 없다.”
 
하지만 제품이란 건 결국 단순히 물질일 뿐이고, 잡스의 죽음에 비춰지는 엄청난 매체들의 관심은 필자에게는 칼 막스가 “물신숭배사상(fetishism of commodities)”이라 부른 것의 전형적 예로 보여졌다. 애플이 됐든 다른 기업이 됐든 결국엔 돈을 벌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제품을 꼭 가져야 합니다, 라고 소비자를 잘 설득할수록 그들로서는 제품을 더 많이 팔아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잘못된다는 건 아니다. 시장 경제가 그런 거니까.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믿는 치명적인 오해다. 애플의 제품들은 이제 반드시 가져야 하는 패션 액세서리가 돼버렸고, 어떤 면에서는 부자들이 선호하는 롤렉스 시계와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카페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을 좀 보라. 그는 맥북 에어를 쓰는데, 당신은 뭐하고 있나? 아직도 아이폰 3GS나 쓰다니, 당신 뭐 문제 있는 사람 아니야?
 
아이폰을 비롯한 디바이스들은 분명 기술 산업 전반에 혁신을 일으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 통신의 발전을 불러왔다. “아랍의 봄(Arab Spring)”과 민주화 과정에서 사용된 스마트폰과 비디오 장치들을 보라. 하지만 이렇듯 제품 그 자체에 중점을 맞추다 보니 결국 아이폰이나 블랙베리,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이집트 혁명을 일으킨 건 아니지 않나.
 
빌 게이츠의 어깨에 기대어
아마도 로버트 하인라인이었던 것 같다. 이 공상 과학 소설가는 “시간이 되기 전까진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시간 여행에 대해 왜 중세 시대로 돌아가 21세기 인간의 지식으로 철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는 그런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도 없고, 선반도 없고, 동력 장치도 없었던 시대니까.
 
마찬가지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없었다면 아이폰도 없었을 것이다. 빌 게이츠와 그의 기업이 개인용 컴퓨터를 표준화시켜 어느 기업에서든 이를 만들고,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수백 만 명의 사람들과 기업들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윈도우의 컴퓨터가 맥보다 더 넓은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윈도우가 더 낫다는 말은 아니다. 사용자가 더 많다는 말일 뿐. 애플의 폐쇄적인 플랫폼은 설령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전 세계 구석 구석까지 펴져나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개인 및 기업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기에, 인터넷 역시 등장할 수 있었다. 수백 만 명의 컴퓨터 사용자가 없었다면 웹 역시 명령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소수 과학자들의 전유물로만 남았을 것이다.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이를 지지하는 인프라 역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상당 부분을 통신 산업이 장악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수요 역시 자라났다. 여기에서도 역시, 모든 이가 사용 가능했던 인터넷이 AOL과 애플의 닫힌 세계에 승리를 거두었다.
 
만일 소비자들이 웹을 선호하지 않았더라면,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를 만들 이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 한 가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 후로,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는 재단을 설립해 세계 제일의 자선 단체를 만들었다. 1994년 이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310억 달러 이상의 펀드를 축적해 세계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써 왔다. 하지만, 웨슬이 자신의 글에서 말했듯 단지 펀드를 축적한 것 만이 아니었고, 이미 25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상태였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돈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역시 많은 좋은 일들에 상당한 기부금을 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 들었을 때,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사업에 열을 올렸던 반면, 빌 게이츠는 좀 더 거시적이고 결과적으로는 더 중요한 일들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에 보내는 서신에서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지닌 재능과 열정으로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곰곰이 되돌아 보길 바란다. 여러분의 직업적 성과 외에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분과는 같은 인간이라는 것 외에는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하였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바란다.”
 
웨슬이 얘기했듯, “이는 사업가가 할 만한 말이 아니다. 인류의 지도자가 할 만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ditor@itwor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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