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9일

[곽병찬 칼럼] 다시 신의 존재를 묻는 이유




 2004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때 종교계는 다음과 같은 난제에 직면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2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유 없이’ 죽어간 사실을 신은 과연 용인했을까.” 지진해일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신실한 신앙인들이 밀집한 지역을 휩쓸었다. 불교의 타이와 스리랑카, 무슬림의 인도네시아, 힌두교의 인도. 유럽 기독교국가에서 온 여행객 수천명도 포함돼 있었다.




 ‘양심적인’ 종교인이라면 먼저 고백해야 할 물음이었다. 영국 성공회의 지도자 로언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명의 뜻하지 않은 죽음도 믿음을 뒤흔드는데, 대재앙에 직면해 ‘이런 엄청난 고통을 허용한 신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캔터베리의 제임스 주교도 그랬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그것도 성탄절 직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답하기 어려운 신학적 의문을 남겼다.” <아에프페> 통신은 이런 성찰적 논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유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신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 유대교 및 기타 종교 지도자들은 ‘지진이 신의 분노였다’는 말을 거부했다.”


 예외가 없을 리 없다. 근본주의 개신교계다.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앨버트 몰러 총장은 <시엔엔>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재앙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개신교계는 압권이었다. 


“쓰나미 희생자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다. …태국 푸켓에서 놀러 갔던 유럽인들이 많이 죽었는데, 예수 제대로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김홍도 목사)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예수의 불호령이 떨어질 법하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은 이웃의 고통을 제 장삿속에 이용하려는 그런 자들부터 징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도호쿠 대재앙 앞에서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운운했던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신의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단지 신의 존재를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의 의미,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철학이건 신학이건 서구에서 신이란 인간 존재의 의미의 원천이다. 인종학살 등 잔인한 살상이 되풀이될 때마다 철학과 신학이 절규하듯이 신의 존재를 물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왜 던져놓고, 짓밟는가!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면, 신의 선택에 대한 물음은 나의 실존적 결단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물음일 터이다. 그 의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종교의 본질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윌리엄스 대주교는 말했다. 결국 헌신을 위한 삶의 결단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1755년 11월, 포르투갈 리스본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희생자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충격을 이렇게 토로했다. “리스본은 폐허로 널브러져 있고, 우리는 파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일본 도호쿠 대재앙은 인간이 이룬 문명을 일거에 휩쓸었다. 해일은 노아의 방주 같았던 8m 둑을 삽시간에 무너뜨렸고, 원자로에서 새나오는 하얀 연기 앞에서 세계인은 숨죽인다. 이보다 더 무력하고 허망할 수 있을까. 오로지 연어떼처럼 죽음의 땅으로 역류하는 헌신의 행렬만이 인간 존엄의 빛을 희미하게 빛낼 뿐이다. 신은? 바로 그 결단에 있지 않을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68185.html


곽병찬 편집인.





신의 의미를 한쪽으로만 국한했다는 점에서 이 논조에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도들의 썩음에는 동의한다. 무신론자입장에서 신의 의미 운운한다는게 나도 참!!








2011년 4월 26일

애플이 먼저 삼성 모방?



▲ 애플의 비공식 웹블로그 투와에 올라온 F700, 아이폰 비교 사진




[스포츠서울닷컴 | 오세희 기자]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디자인 소송을 걸고 맞소송을 하며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애플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반응이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의 한 웹블로그는 애플이 오히려 삼성전자의 휴대폰을 모방한 것이 아니냐며 사진을 게시하는 등 애플보다 삼성의 손을 들어 주고 있어서다.






◆ 애플이 먼저 삼성 모방?


애플은 지난 15일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과 갤럭시탭 등이 자사 제품을 모방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특허권과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애플은 삼성이 디자인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애플이 삼성의 디자인을 먼저 차용했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애플의 비공식 웹블로그인 투와(tuaw)는 21일(한국시간) 삼성전자가 지난 2006년 세빗(CeBIT)에서 발표한 스마트폰 F700의 외관이 애플의 아이폰과 비슷하다는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F700의 외관 디자인 사진을 비교할 수 있게 나란히 게시했다.


그는 “삼성이 F700를 2006년 먼저 발표한 이후 애플이 다음해인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처음 선보였다. 두 제품 사진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며 애플이 삼성의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에 미국의 네티즌 역시 “애플의 소송은 바보 같다. 애플은 지금까지 스웨덴의 유명 휴대폰회사 네오노드로부터 많은 방식을 차용해 왔다. 애플은 다른 회사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그것을 되팔아 많은 이익을 낸 회사”라며 애플을 비난했다.


외신들 역시 애플이 삼성을 소송 상대로 지목한 것이 삼성의 위상을 높인 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최근 호 ‘애플 대 삼성’ 이라는 컬럼에서 “애플의 소송은 삼성이 예상보다 어려운 적수가 됐다는 뜻이다. 애플이 삼성을 치켜세워준 꼴”이라고 보도하며 삼성에 무게를 실었다.






◆ 삼성전자, 애플에 반격


삼성전자는 22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애플 코리아를 상대로 특허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21일 제기했다”며 “일본 도쿄 법원과 독일 맨하임 법원에도 애플의 특허 침해에 관해 제소했다”고 밝혔다.


애플을 상대로 삼성전자가 진행한 특허 침해 소송은 모두 10건이다. 한국에서 5건, 일본에서 2건, 독일에서 3건을 나눠 제소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애플 소송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있으며 1~2개월 안에 미국 법원에도 맞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자사의 데이터 분할 전송, 전력 제어, 전송 효율, 무선데이터통신 등 10건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10건 가운데 4건의 특허 침해 사례를 공개했는데 데이터를 전송할 때 전력 소모를 감소하고 전송 효율을 높이는 고속패킷전송방식(HSPA) 통신 표준 특허가 그 첫 번째다.


또 데이터를 보낼 때 수신 오류를 줄이는 광대역 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통신 표준 특허를 애플이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휴대전화를 데이터 케이블로 PC와 연결해 PC로 무선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특허를 침해했다고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이 미 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검토한 결과 애플의 주장이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플의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며 소송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 일본, 독일, 미국에 이어 다른 국가에서도 소송을 제기할지 등 이후의 절차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sehee109@media.sportsseoul.com


http://news.sportsseoul.com/read/economy/93495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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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아이폰은 아이팟에서 비롯된건데 저런 비교를 하다니..
게다가 2006 CEBIT 어디에서도 찾을수가없었는데.. 하하.!



2011년 4월 25일

2011년 4월 21일

애플 - 삼성



http://cdn0.sbnation.com/podcasts/apple-samsung-lawsuit.pdf




Apple sues Samsung: a complete lawsuit analysis


http://thisismynext.com/2011/04/19/apple-sues-samsung-analysis/


위 두가지 링크는 애플이 삼성을 소송한 증거다.

언젠간 일이 크게 터질거 같더라니..

카피캣이라고 비난한 잡스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결국에 소송까지 당한 모양새인데.. 안타깝다.




2011년 4월 18일

애플 아이패드2 광고






This is what we believe.
우리가 믿는 것은 이것입니다. 



Technology alone is not enough.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Faster,
더 빠르게



thinner,
더 얇게,



lighter
더 가볍게



Those are all good things.
이러한 것은 모두 훌륭한 점입니다.



But when technology gets out of the way
그러나 기술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everything becomes more delightful
모든 것이 더욱 행복해집니다.



even more magical.
마치 더욱 마법과 같이.



That's when you leap forward.
바로 그때가 여러분들이 도약을 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That's when you end up with something like this
바로 그때서야 이와 같은 것을 만나게 됩니다.




인문학과 기술사이의 고심을 잘 드러내는 영상.!



2011년 4월 5일

마법의 장막 너머 / behind the magic curtain



 캐드베리-쉐퍼스 CEO가 연설을 하거나 나이키 CEO가 새 신발을 내놓는다고 생각해보자. 전문지에 보도가 되고 나면 금세 잊혀지리라. 그러나 화요일 한 CEO가 무언가 발표를 하고나면 몇 분 안에 웹과 주식브로커의 컴퓨터에서 분석이 이루어질 것이다. 몇 달이고 화제가 될 것이다.


 그 CEO가 스티브 잡스, 그의 발표가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을 나도 안다. 일견, 검은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서 뭐 새로 나온 기술을 응용한 제품에 대해 말하는 어떤 사람일 뿐이다. 실은 말이다, 판촉, 제품 시연, 회사 응원의 놀랍게도 복잡하고 세련된 혼합에다 어쩌면 종교적인 부흥회 분위기까지 얹은 일이다. "커튼 저편의 남자"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열심히 정교하게 맞추고 몇 주를 쏟아부은 일이다. 나 자신 그 준비 과정을 겪고 스티브와 무대에 서보았으니, 잘 알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 애플 컴퓨터는 주 시장에서 조그마한 몫을 가진 중간 크기의 회사이다. 애플 매킨토시는 기업 환경에서는 드물게 보는 존재이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애플 호환 버전을 내놓지도 않는다. 달리 말하면, 연간 매출에서 캐드베리-쉐퍼스 보다 조금 크고 나이키나 마크&스펜서와 비슷하다. 그런 비교는 기업계에서의 애플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뭔가 부족하다. 핵심 요소, 스티브 잡스 말이다. 단지 한 회사 - 픽사 만이 주장할 수 있는 요소. 기업계에서 락스타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애플이 신제품을 발표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것은 상당 부분 스티브와 그의 발표 방식 탓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방법은 공개 발표, "키노트" 에서 주력 상품을 공개하는 것이다. 스티브는 몇 주 전에 키노트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후보가 될 전 제품과 기술의 리뷰로부터. 개발과 출시 일정은 한참 뒤가 되지만, 선택한 제품들이 키노트할 준비가 되어야만 만족한다. 소프트웨어에서는 어려운 선택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진행 중인 일이므로, 미완의 소프트웨어를 보고서 미리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실제로 리허설에서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심각해졌던 일이 없지 않다.

 


불세례

 이 준비의 첫경험은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 키노트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던 dvd 기록을 할수 있는 새 맥이 주제였다. 스티브는 새 소프트웨어, iDVD의 기능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애플의 DVD 소프트웨어 제품 책임자로서, 나는 스티브가 필요할듯 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나와 팀원들은 5분 가량의 발표를 위해 수백 시간을 쏟아부었다. 두어 달 후 내가 생각하는 가장 흥미로운 측면을 강조하는 데모를 위해 스티브가 불렀다. 물론 그는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절차는 그래도 유용한 것이다. 이런 데모의 요점에 따라 그는 전체 발표를 가다듬고, 제품 하나하나가 차지할 시간을 결정했다.

 그 다음, 무대에서 DVD를 만드는데 쓸 영화, 사진, 음악을 찾아야 했다. 대체로 클립아트를 쓰거나 비디오 제작자를 고용해서 "홈 무비"를 만들어 낼 일이다. 스티브는 내용이 훌륭하게 보이면서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기를 원했다. 해서, 애플 사람 모두가 최고의 홈 무비와 사진을 제출하기를 요청했다. 금방 재미나고 멋지면서 감동적인 영상과 사진을 잔뜩 받았다.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그 대로, 그는 대부분의 내용을 싫어했다. 예닐곱 번 그 과정을 거듭했고, 당시에 나는 말도 안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이 초기 내용보다 훨씬 나았음은 인정한다. 그리고 데모. 스티브가 할 과정 하나하나, 프로그램이 이미 실행되어 있을지, 어떤 샘플을 실행할지, 죄다 말이다.

 데모가 준비되고 나서 내 역할은 소프트웨어에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스티브가 갈아엎고 싶어할지를 대비해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주위의 일들이 돌아가는 것을 관찰할 기회이기도 했다. 큰 키노트에는 개별적인 작업을 수행할 팀을 포함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수천 명이 참석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하는 팀. 자동 연단, 이중 무대, 비밀 문 등을 갖춘 무대를 만드는 팀. 조명, 음향과 각종 효과를 관리하는 팀. 그리고 최신의 영사장비를 설치하고 조정하는 팀과 그 백업. 웹캐스트, 행사에 필요한 모든 비디오의 재생을 위해 외부에 세운 거대한 영상 트럭. 그리고 키노트에 사용할 컴퓨터들을 설치할 사람들은 스위치 하나로 전환할 백업을 최소한 하나는 갖추었다.

 물론, 비밀 엄수를 빼놓을 수 없다. 스티브의 발표는 깜짝 효과를 필요로 한다. 일단 리허설이 시작하면, 보안 요원들은 호사가는 제외하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 뭐 하나 넘어가는 법이 없다. iDVD 의 리허설에서 스티브는 DVD 플레이어의 리모컨이 무대에 서고 싶은 위치에서 동작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중계장치가 만들어지고, 리모컨 작동이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새까만 무대에 스티브가 올라 보기에 단순한 데모를 할 때면, 그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및 각지의 모든 인원의 에너지와 재능을 모두 모아 관중에게 내붓는다. 나는 햇볕을 자그만 점에 모아 불을 당기는 돋보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 년 후, 키노트에서 시연을 요청받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시연이 뭔지 배웠다. 2001 년 중반, DVD 제품뿐 아니라 애플의 전문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인 파이널컷 프로를 맡게 되었고 2002 년 초에 새 버전이 나올 예정이었다. 스티브는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는 시연하지 않았다. 언제나, 기능과 작동에 더 익숙할 제품 부서 사람에 의존해 왔다. 그 일이 내게 떨어졌다. 그것은 내게 애플에서의 최고와 최악의 순간이었다.

 보통 스티브는 키노트 이틀 전에 리허설을 한다. 첫날에는 관심을 집중해야 할 부분. 신제품의 제품 책임자와 기술 책임자 모두가 차례를 기다리며 방에 있다. 이 사람들은 스티브의 임시 관객이기도 해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애플의 디자인 팀의 도움을 얻어, 그는 대부분의 슬라이드 내용을 직접 쓰고 고안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발표의 부분부분을 다듬고, 스티브와 프로듀서는 그 자리에서 파워북으로 수정해서 고친 슬라이드를 바로 시험한다. 그 날 스티브는 발표의 모든 측면을 꼼꼼히 따져본다. 최대 효과를 위해 내용과 흐름을 이리저리 바꾸어 본다. 주력 상품을 새로 소개 할때면, 홍보를 위해 애플의 TV 광고를 보여주곤 한다. 광고는 리허설 몇 분전에 완성되기 십상이다. 때때로 여러가지 버전을 보여주고 반응에 따라 결정하기도 한다.


 


막판

 발표 전날이면 자리가 잡히고, 드레스 리허설을 한두 번 한다. 사외 발표자들은 이틀째에 키노트를 해본다. (새 아이팟이나 랩탑 같이 극비 영역의 리허설은 제외) 스티브는 시종일관 극도로 집중한다. 참석했을때, 그의 모든 에너지가 애플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구현하는데 집중된다. 리허설에서도, 개성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부분 100% 비즈니스.

 5분의 시연을 위해 몇 주를 보내면서 적절한 샘플을 고르고, 내 생각에는 다듬고 발표를 연습했다. 내 상사, 그 위의 상사가 응원차 참석했고 스티브는 버릇대로 관중석에 앉았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스티브의 레이져 같은 눈빛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연이 시작한지 1분 쯤 지나 스티브가 나를 중지하고 말했다. "제대로 하거나, 키노트에서 시연을 빼거나 해야겠군."  나는 좌절했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할지, 아니 대꾸를 해야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내 상사 필 쉴러(키노트 발표로 단련되 애플 마케팅 책임자)가 구원에 나섰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그들은 내 시연을 다듬는 일을 거들었다. 중요한 것은, 필의 충고였다. "홀에 있는 6000 명 맥 팬들은 적이 아니라, 최고의 친구란 말일세." 그리고 다음 날 마지막 리허설에서, 스티브는 다시 참관했고,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기분이었지만, 진짜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무대 차례를 기다리며 첫 줄에 앉아 있으려니 행사의 압박이 나를 덮쳤다. 실내의 수천 명, 웹캐스트를 보는 5만 명. 그것은 바로 압박의 정의였다. 내 바로 앞 순서를 스티브가 시작했고, 심장이 벌컥거렸다. 수만 개의 눈동자가 내게 쏠리는 것을 느끼고 무너질까 두려워졌다. 공개 석상에서의 연설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런 기회는 처음이었다. 부제작자가 와서 무대 옆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둠 속에 서서 스티브가 나를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펼치는 광경을 보았다. 바로 그 순간, 나를 스친 생각이 있었다. 5분, 5분이면 다 끝나는 일 아닌가. 5분 만 버텨내면 괜찮을 것이었다. 나는 층계를 올라 무대에 섰고, 갑자기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시연은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관중은 제품을 사랑했다. 환호성은 놀라운 흥분을 선사했다.

 끝나고 나는 잘 했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중 하나는 바로 스티브의 칭찬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키노트를 두 번 더 했고, 매번 나는 스티브의 가혹한 첫 리허설에 감사했다. 그는 나를 몰아붙였지만, 결국 그 덕분에 나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내 생각에는 그것이 애플에 있어서 스티브 잡스의 가장 중요한 영향력이다. 다른 사람 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 있어서도 최고가 아니면 참지 못한다는 것.

* 마이크 에반젤리스트는 2002 년 애플을 떠났고, '내가 아는 잡스(Jobs I've Known)'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고 있다 - http://www.writersblocklive.com/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45999-%EB%A7%88%EB%B2%95%EC%9D%98-%EC%9E%A5%EB%A7%89-%EB%84%88%EB%A8%B8-behind-magic-curtain.html

2011년 4월 4일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3)




"마지막 보루는 결국 재정 건전성…감세 후유증이 두렵다"


프레시안: 기준금리와 맞물린 문제가 가계부채다. 지금처럼 늘어난 가계부채는, 설령 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이동걸: 가계부채가 아직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잠재적으로 상당수 부실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소형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축은행 한두 곳이 넘어간다고 망할 수준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단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게끔 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계부채 자체만으로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이게 재정건전성 문제와 겹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언제나 마지막 보루는 재정 건전성이다. 1998년, 김태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일할 때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라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외국 투자자들이 청와대로 왔다. 당시 그들에게 투자유치를 할 때마다 우리가 한 얘기가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보시오. 공적자금 집어넣어서라도 당신들이 손해 안 보도록 하겠습니다'였다. 그 말 한마디면 다들 '오케이' 했다. 재정 건전성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지금, 재정 건전성이 아주 좋다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게 터져도 해결이 가능하다. 공적자금을 넣거나, 세금을 투입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사정이 점차 안 좋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기업부실이 문제였고, 이게 해결되고 나니 가계부채로 전이됐다. 여기에 다음 정부는 과잉 부채 문제까지 짊어지게 된 형국이다.


 기준금리를 제때 올리지 않아서 가계부채가 너무 늘어난 것, 또 현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것 등이 서로 결합하면, 분명히 위험해진다.










'젊은 대기업'이 계속 생기는 미국 vs '젊은 기업'은 클 수 없는 한국


프레시안: 현 정부가 고집한 '저금리' 기조와 짝을 이루는 게 '고환율' 기조다. 이런 기조가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많다. 또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고환율을 유지위해 시장개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걸: 미국 내부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오르는 건 불가피하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이 계속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면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상태인데도 고환율이 유지된다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고환율로 수출 경쟁력이 유지 되나. 이것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만 배불리고, 중소기업과 서민은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기업은 이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때가 됐다. 어차피 지금도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대부분 대기업이 혜택을 누리게끔 돼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정부가 챙겨줄 필요는 없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목록을 보면, 창업주 당대에 이 리스트에 들어온 미국 기업이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등 5~60곳이 넘는다. 이게 미국의 경쟁력이다. 반면, 한국은 새로 창업한 기업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어느 수준 이상은 크질 못한다. 전부 재벌이 쌓아놓은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또 원화 평가절상을 해야 해외투자에도 좋다. 이 부분까지 염두에 두면 무작정 고환율을 고집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 한다. 이게 '법치국가'인가?"






프레시안: 공직에 있을 때 금산분리 완화, 생명보험사 상장 등 삼성과 관련된 쟁점에 많이 개입했다. 그러다가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동걸 : 금산분리 원칙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선 워낙 말을 많이 했다. 이젠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거느리면, 시장경제가 왜곡된다. 평가받는 쪽이 재벌이다. 반대로 평가하는 쪽이 금융기관이다. '평가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을 인수하는 게 선수가 심판을 매수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몹시 해롭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감위 부위원장 직을 사퇴한 것은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때문이었다. 삼성생명이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를 제기하자, 주변 사람 대부분이 내 적이 됐다. 그래서 결국 자리를 떠났다.


삼성생명 상장 문제를 놓고도 대립이 있었다. 나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 문제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본다. 이는 결국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냐 주식회사냐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생명보험사를 주식회사로 시작했음에도 김영삼 정부 때까지 사실상 상호회사처럼 운용해 왔다. 김영삼 정부는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지는 대신 그들의 몫도 인정받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생명보험사가 상장하면,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계약자들이 실제로 부담을 짊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명보험사는 주식회사이므로 상장차익은 오로지 주주에게만 나눠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마치 상호회사처럼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던 김영삼 정부나, 주식회사이므로 보험 계약자에게 돌아갈 상장 차익은 없다던 노무현 정부 가운데 하나는 국민에게 사기를 친 셈이 된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보험 계약자들만 억울하게 됐다. 이런 역사를 경제부처에서 오래 일했던 관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이런 역사를 알기 때문이었다. 윤증현 장관이라고 해서 김영삼 정부 시절 보험 계약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윤 장관은 과거 일은 전혀 모른다는 듯, 상장차익에서 보험계약자 몫을 싹 무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삼성생명 주주들은 횡재를 했고 보험계약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윤증현 장관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했는지, 그리고 윤 장관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말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법과 제도를 신뢰할 리가 없다.


그런데 삼성생명 상장 문제나 저축은행 공동계정 문제를 보면,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하는 형국이다. 이게 과연 법치국가인가 싶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21180021&Section=02&page=2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2)






"'론스타 문제', 공적자금 투입 못한 게 원죄다"


프레시안: 금융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결국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국은 약점이 많다. 특히 '론스타' 문제는 한국의 금융감독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이동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도록 인가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론스타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복잡한 감정이 있다. 외환은행 문제에는 원죄가 있다. 바로 공적자금 투입을 못한 게 원죄다. 2003년에 공적자금 2조 원만 있었어도 외환은행과 LG카드를 사서 정상화 시킨 후 정부가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투입할 공적자금이 없었다. 당시 실무진한테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양해각서(MOU)를 작성한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내가 한 첫 마디가 '이건 이정재 금감위원장이 정책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두 번째로 한 말은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이 인수하는 방법을 검토해보라'였다. 둘 중 하나, 특히 산은은 외환과 결합하면 완벽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실무진의 검토의견이 '적어도 정부가 5000억 원 이상은 재정확충을 해줘야 하는데, 조달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론스타에 줬다. 왜 굳이 사모펀드에 넘겼느냐고 비판하겠지. 당시 생각은 이랬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메이저 은행을 외국은행이 너무 많이 장악하는 게 큰 문제가 되리라고 봤다. 안 그래도 스탠다드차티드(SC), 씨티(Citibank) 이런 은행들이 속속 들어왔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돈 왕창 벌고 나가더라도 펀드에 넘겼다가 국내에서 되사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했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이 돈 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이차적인 이야기다. 가장 좋은 대안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국가에 이득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게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못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외환은행 문제, 한나라당도 책임 있다"




 2002년 말에 한나라당이 워낙 거세게 공격해서 진념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적자금을 종료했다. 상환기금을 만들고 완전히 문을 닫았다. 당시 공적자금 상환 방안을 만든 게 나다. 금융연구원 사상 최대 규모의 작업이었다. 박사만 9명이 투입됐고, 회계법인 여러 곳이 동원됐다. 당시 재경부에서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만들어 달라며 연구원에 왔었다. 당시 연구원 측은 '공적자금을 완전히 닫으면 안 된다. 돈이 더 필요하다. 외환은행, 현대투자증권 등 몇 곳에 넣을 돈 2~3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 일도 아닌데 재경부 쫓아다니고 기획예산처 찾아다니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정치적으로 안 된다는 거다. 야당과 공적자금을 닫기로 합의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2003년 1월에 노무현 정권 인수위에 들어가서 하나 '빵' 터뜨렸다. 당시 <경향신문>이 1면 톱에 쓴 "공적자금 8조 원 필요해"라는 기사가 그렇게 나왔다. 그걸 보고 노 당선자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못했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던 게다. 그 뒤, 2003년 4월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정재 당시 금감위원장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기자실에 가서 폭탄 하나 터뜨리겠습니다. 공적자금 8조 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사표 쓰겠습니다. 그러면 4조 원은 안 만들어주겠습니까."


 공적자금 4조 원만 조달하면 김대중 정부 때 해결 못한 외환은행 문제, 새로 터진 카드문제 싹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온 사방이 적이었다. 당장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결사반대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적자금을 비정상적으로 빌려주는 걸 보니 굉장히 씁쓸했다. 2003년에 공적자금이 있었으면, 지금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텐데. 그래서 나는 외환은행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도 자유롭진 않다고 본다. 자신들을 마치 책임 없는 양 행세하는데, 무책임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깨끗이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공적자금 투입을) 닫아버려서 할 수 없이 생긴 부분이 있는데 말이다. 론스타와 관련해서, 주가조작 등 그 이후에 터진 사건들은 잘 모른다. 다만 내 의견을 말하라면 적격성 심사는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일단 금융감독당국이 인가해줬는데, 나중에 '안 된다'고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외환은행 문제는 조금 '쿨하게' 봤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 동안 론스타가 잘못한 걸 바로잡는 건 옳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배 아프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아쉽지만 깨끗이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금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약자는 손해 보고 강자가 돈 벌게 돼 있다. 법적으로 봐도, 론스타 관계자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만 끌면, 결국 론스타에게만 좋은 일이다. 그들이 3년 전에 나갔다면, 3조 원만 벌어서 나갔을 텐데, 시간 끌어서 5조 원을 벌게 됐다.


 돈은 아깝지만, 국내은행이 빨리 인수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고 본다. 물론, 내가 이 사건 관련자이므로 어느 정도 '편향'이 있다는 것,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실력이 없어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준 것이라는 생각도 분명하다.


 안타깝기는 LG카드도 마찬가지다.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 이 문제 처리할 때 '개혁적 학자라더니 결국 관치하느냐'라는 욕을 참 많이도 들었다. LG카드 역시 자금만 투입하면, 회생 가능한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종합적인 판단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굉장히 아쉽다.






"'저축은행 부실, 지옥에 가서라도 물어내게 한다'더니, 그 약속 어디로…"






프레시안: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하다. 결국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동걸: 그 동안 저축은행들이 한 일이 후순위채(발행기관이 파산했을 경우 가장 마지막에 투자금을 상환받을 권리를 가진 채권.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시 자본 계정으로 계상되기 때문에 재무제표를 왜곡시킨다)를 높은 금리로 발행해서 돈을 끌어온 후 더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짓이었다. 부실이 오래 전부터 생겼는데 오래 끌다가 더 커진 것이다. 정부가 건설경기를 부양하려고 저축은행에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다 이렇게 됐다. 구조조정은 지연한다고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정부가 대응책으로 은행권 공동계정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는 반대한다. 저축은행의 부담을 다른 은행에까지 전가시키는 것으로, 은행 예금자가 저축은행을 도와주는 꼴이다.


 저축은행에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게 됐으니 공적자금 상환대책도 미리 만들 때가 됐다. 예금보험료만으로는 안 된다.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공적자금을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저축은행 부실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물어내게끔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한다. 이래서야 되겠나. 지난해 말 저축은행 부실지원액이 7조 원이다. 이 중 다른 금융권에서 전용한 게 벌써 3조5000억 원이나 된다. 이번에 공동계정을 만들어 저축은행 문제를 푼다는 것은, 이걸 상환할 생각 없이 더 가져다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덮고 가면 안 된다. 공적자금을 제대로 투입하고, 이를 투명하게 감시해야 한다.




"미국 재무 장관 전화에 '예스, 서'라고만 한 강만수, 안타깝다"




프레시안: 기준금리가 2년 3개월 만에 3%로 올랐다. 한은 금통위의 결정을 어떻게 보나?


이동걸: 너무 늦게 올렸다. 2009년 여름부터, 늦어도 가을에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우리는 위기의 진원지가 아니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말이 많지만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공적자금을 투입한 덕분에 금융기관 건전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우리 기업체도 부실하지 않았다. 이게 미처 나빠지기 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뜯어보면 우리가 받은 충격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뿐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버티기가 쉬웠다. 유동성을 늘리고 재정자금을 투입해서 경기를 부양했다.


 문제는 국내 문제가 아니었다. 외국의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낼 때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얘기할 위치가 아니었지만, 주변에 내가 한 얘기가 딱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서 할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달러와 통화스왑하면 된다'는 거였다. 우리나라가 국제 기축통화라면 외환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달러가 빠져나가서 생기는 문제는 기축통화가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니 위기 때 원화를 일시적으로 달러처럼 쓰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의 외환보유고, 외환유동성에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런데 강만수 장관이 어떻게 했나. 2008년 페니메이(Fannie Mae, 미국의 국책 모기지 업체, 이게 무너진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졌다)가 망했을 때,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세계 각국 경제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국채(T-Bond)를 팔지 말아달라는 전화였다. 강 장관도 받았다. 그런데 그가 곧장 한 말이 '예스, 서(Yes, Sir)'였다고 한다. 잘못된 대응이다. 당시 우리가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반만 풀어도 국제금융시장이 뒤집어진다. 이런 힘을 배경으로 미국에 당장 통화스왑을 하자고 했어야 했다. 당시 미국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니메이가 망하자마자 그렇게 했으면, 2009년부터 한국은 문제가 생길 게 없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기회를 놓치고 한참 기간을 끈 뒤에야 간신히 통화스왑을 했다. 그것도 구걸하다시피해서 말이다. 그때는 이미 미국이 유럽과 무제한적인 스왑을 체결한 상태였다. 한국을 비롯한 4개국만 맨 마지막에, 고작 400억 달러 수준으로 스왑을 맺었다. 때를 놓치는 바람에 외환위기가 길어졌다.




"때를 놓친 출구전략"…"한은 금통위원 3분의 1, 야당이 뽑자"




 그걸로 끝이었나. 아니다. 그 후 유동성을 엄청나게 늘리느라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시기를 놓쳤다.


2009년 3분기가 경기 바닥이었다. 경기상승기에 선행해서, 기준금리를 끌어올렸어야 한다. 경제학의 기초공식(MV=PQ)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으로 통화량(M)이 늘어나는데도 경기가 나빠 화폐 유통속도(V)가 떨어지니까 경기가 나쁜 상황이었다. 총통화량(MV)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가 좋아지면 V가 굉장히 빨리 늘어난다. 그럼, 바로 인플레이션이 된다. (가격(P)이 오른다는 뜻)


 한마디로, 너무 풀린 유동성이 폭탄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미리 차단하지 못한 탓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에서 7% 수준으로 튀어 올랐다. 이렇게 과열되는 게 경제운용을 잘 한 건가? 빵점이다. 진작에 통화량만 제대로 흡수했어도 경기과열도 없었고 물가대란도 없었고, 당연히 경기운용이 훨씬 쉬웠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왜 때를 놓쳤을까. 실력이 없어서?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못한 거다. 통화금융당국이 정치적으로 변할 때, 독립성을 잃을 때 생기는 폐해를 우리가 지금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행을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람들이 청와대 지시대로 움직이느라 금리 낮춰야 할 때 오히려 올려버리고, 올려야 할 때 낮추는 황당한 짓을 하도록 해선 안 된다. 한은 직원이면 대단한 엘리트 아닌가. 그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개혁할 때가 됐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김중수 총재가 져야 한다.






프레시안: 한은 개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동걸: 물론, 제도적 개혁이라는 게 정답은 없다. 다만 지금의 금융감독기구가 정부 눈치만 보고, 할 일은 안 하고 있으니, 금융감독기구를 한은 밑에 넣자는 게 내 생각이다. 금융 부문에 대한 모든 감독권한을 한은에 집중시키고, 한은을 집중적으로 감독하자는 것이다. 한은이 지금도 사실상 유동성을 조절하면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부문까지 제어하고 있지 않은가. 안될 것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통화금융 및 감독 권한을 한은에 주고, 금통위원의 3분의 1은 야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 몫 금통위원도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일부를 야당이 지명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들 금통위원들이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게 좋다. 어차피 한은이 정치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해결해서 집중 감시하는 게 옳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21180021&Section=02&page=1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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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앞에서 체면 따지는 사람은 없다. 이자를 0.1%라도 더 쳐주는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게 세상의 원리라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인정한다. 이처럼 벌거벗은 욕망들이 알알이 모이고 부딪혀 거품 일으키며 흐르는 바다가 바로 '금융'이다. 아무런 가식 없는, 실용의 세계다.


 '금융'과 '선비'의 조합이 영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벌거벗은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는 선비라니,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욕망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일수록 '선비'처럼 올곧은 심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큰 돈이 오가는 거래일수록 규칙이 엄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타짜들이 날뛰고, 결국 판 자체가 깨진다.


무턱대고 '실용'만 쫓는 논리가, '실용' 그 자체를 위해서도 해로운 이유다. 한마디로, 금융에도 선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 선비 같은 금융인이 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가 2009년 1월에 쓴 글이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이었고, 임기를 1년6개월 남긴 상태에서 갑작스레 사표를 냈다. 이 글은 당시 이 교수가 금융연구원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다.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왔던 그는 정부로부터 다양한 압력을 받았고, 결국 자기 발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당시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선비'를 떠올렸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모습이 딱 '선비'라는 게다. 그런데 그에겐 이런 일이 이게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에도 그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었다. 역시 자신의 소신 때문이다. 실용만 쫓는 이들에겐 '물 좋은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그의 모습이 그저 어리석게만 비칠 게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행동이 우리 경제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게끔 해 왔다.


 묘한 것은 두 차례의 갑작스런 사퇴가 모두 삼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장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던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삼성 지배구조 문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대의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금산분리 관련 규정은 이런 순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떠난 것도 삼성 문제 때문이다. 당시 금감위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부위원장이던 이 교수는 생명보험사 상장 이익에서 보험 계약자 몫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고객에게 소유권과 이익이 분배되는 회사)'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당시 금감위 안에서 소수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수파였다. 금감위 안에서는 계약자 대 주주 몫이 7 대 1 또는 8 대 1까지 거론됐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당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생명이 수년간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거액의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 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파악해 공개한 것이다.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이건희 회장 등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후손 몇몇에게 돌아갔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이 교수가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공론화하자, 주변 관료들 대부분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교수는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리를 떠났다. 생명보험사 상장 차익에서 보험 계약자의 몫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다. '7 대 1 또는 8 대 1'이 아니라 '0대 10'이 된 것이다.


 이를 놓고,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말까지 생명보험사 상품은 모두 배당보험이었는데, 배당보험은 생명보험사가 손해를 보면 보험 계약자가 배당을 덜 받게끔 돼 있다. 보험 계약자가 회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구조다. 일종의 '상호회사' 방식이다. 그런데 막상 상장이익이 생길 것 같으니 '회사는 주주의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과 정반대 편에 서서,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모두 주주에게 돌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고 있는, 바로 그 윤증현이다. 윤 장관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약 4조6000억 원의 상장차익을 얻게 됐다.


 윤 장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고위직을 맡았고, 이 교수는 두 정부에서 모두 중도 사퇴 이력을 남겼다. 윤 장관과 이 교수의 이런 대조적인 이력은, 적어도 재벌 문제만큼은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4일, 이 교수를 만났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만난 그는, 금융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또 과거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측근부터 시작된 MB레임덕…'한탕'하고 탈출하려는 이들만 많다"




프레시안: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임명됐다. 현 정부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이보다 앞서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인 어윤대 씨가 KB금융지주 회장이 된 일도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다 자리에서 물러난 입장에선 할 말이 많을 듯 하다.


이동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보고 '레임덕이 측근부터 시작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한탕 하고 탈출하자'라는 심리가 번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점점 불길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측근부터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강만수 씨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다. 세제 전문가일 뿐이다. 오로지 충성심을 기준으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임명하는 일이 현 정부에서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노동정책 전문가에 가깝다. 물론 어느 정부나 다 이런 면이 있다. 내가 김대중 정부에서 1년, 노무현 정부에서 1년 반 동안 대통령을 지켜봤다. 결국 인사는 충성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게 너무 심하다.








"산은 민영화,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럿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산업은행과 관련해서는 쟁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민영화' 논란이다.


이동걸: 산은 민영화, 나는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 만약 정부가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산은 전체를 민영화하면 된다. 그런데 정책금융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정책금융공사를 새로 만든 것 아닌가. 정부는 경쟁력 있는 종합금융사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다. 만약 정부가 종합금융그룹을 제대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굳이 민간에 넘기지 말고 자기들이 계속 끌고 가면 된다. 왜 민영화를 하겠다는 건가. 정부의 방침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러 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억지로 종합금융그룹을 만들려 하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산은은 자생력이 없다. 지금까지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로 자금조달을 했지만, 민영화 이후엔 산금채 발행을 못한다. 그럼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건가. 은행이 자금을 구하는 통로는 전국에 깔려 있는 지점망이다. 그런데 산은은 지점망이 없다. 그래서 자생력이 없다는 게다. 그러니까 우체국금융이나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을 집어삼킬 궁리만 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자생력 없는 기관을 민영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이게 만약 성공한다면, 결국 정부가 특혜를 줬기 때문일 게다. 이런 민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 이동걸 한림대 교수 ⓒ프레시안


"메가뱅크 있어야 원전 수주?…60~70년대 발상일 뿐"


프레시안: 이른바 '메가뱅크(Mega Bank. 초대형 은행)'도 쟁점이다. 이번에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된 강만수 씨가 대표적인 메가뱅크 예찬론자다.


이동걸: 메가뱅크는 한마디로 1960~70년대식 발상이다. 과거에는 국내 은행들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어느 정도 커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다'라는 식의 주장이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은행들이 충분히 크다. 우리, 국민, 신한, 하나가 200조 원(약 1800억 달러)이 넘는 규모다. 이 정도면 미국에서도 7, 8위권이다. 미국에서도 1조 달러가 넘는 곳은 제이피모건(JP), 씨티, 웰스파고 등 네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 3000억~2000억 달러 수준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제경쟁력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다. 경제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한국에서 250조 원 은행이면, 미국에선 2500조 원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도 2500조 원이 넘는 은행은 없다. 어떤 기준으로 보건, 규모가 작아서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힘들다. '메가뱅크' 주장이 나와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 은행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인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내실이다.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고 진짜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 측근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해 메가뱅크를 무리하게 추진할까봐 더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모든 게 굉장히 과감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기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대단해 보인다. 산은 민영화도 그래서 하는 것 아니겠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에게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고 했던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원전 수주와 관련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그 해법으로 국내은행간 인수합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세계적으로 자산순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은행이라고 해서 혼자서 국제자금 조달을 하는 곳은 없다. 신디케이트(공동판매회사)로 하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 모은 후 들어간다. 원전 수주 등 대형 사업에 필요한 자금 수주는 은행의 규모 문제가 아니다. 국제금융의 바닥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는 게 필요하다. 그게 없는 상태에서 덩치만 키우자는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리먼브라더스, 만약 인수했다면 결국 빈 책상만 남겼을 것"






프레시안: 정부 당국자들 역시 국제 금융계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을 필요는 인식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중단됐지만, 현 정부 초기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려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인수하면, 한국 금융계에 부족한 인맥과 노하우를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다는 게다.


이동걸: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을 금융 비전문가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리먼브라더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걸 우리가 인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리먼브라더스가 갖고 있는 인맥과 노하우가 우리의 것이 됐을까. 그래서 우리는 단숨에 국제금융계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됐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의 인재들은 엄청나게 빨리 턴오버(Turnover, 인사교체) 된다. 우리가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한 뒤에, 세계경제가 조금만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다면, 리먼브라더스의 인재들은 다른 곳으로 다 스카우트 돼 갔을 게다. 그러면 거액에 인수한 리먼브라더스에는 책상과 전화기만 남는다. 투자은행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이들은 이력서에 얼마나 직장을 여러 번 옮겼는지를 적는 게 자랑거리다. 실력 있는 사람은 한 곳에 일 년 반 이상 머물지 않는다. 이런 인재들을 끌고 갈 리더십이 있어야만, 투자은행을 경영할 수 있다.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은행(Commercial bank)은 장치산업"이라는 말이다. 은행은 지점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운영이 된다. 그런데 그 지점이라는 건 제3자가 은행을 인수하더라도 철수시키기 어렵다. 영업 기반이 그대로 유지되고, 따라서 사람들도 그 기반을 따라 움직인다. 은행(Commercial bank)이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달리 스카우트가 적은 이유다. 씨티은행을 인수한다면 그곳의 지점망과 인재 대부분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은 다르다. 투자은행은 전부 팀 단위로 움직인다. 그 팀이 가진 네트워크에 따라 업무가 돌아간다. 이런 팀들을 제대로 이끌 능력이 없다면, 투자은행 인수는 헛일이다. 그리고 지금 수준에서 한국이 투자은행을 인수해서 세계 금융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명백한 증거가 일본이다. 일본이 돈이 없어서 투자은행을 못하나. 아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것이다. 20~30년을 투자하고도 미국계 유대인이 중심인 국제 금융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회사 하나 인수한다고 되겠나.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이 정부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국내 금융을 굳이 해외로 진출시키고 싶다면, 우선 은행을 인수하는 게 낫다. 그 다음이 보험이다. 그 뒤에나 고려해 볼만한 게 투자은행이다. 그나마 KB금융은 카자흐스탄 은행 인수했다가도 손들고 나오지 않았나. 국내 금융계의 실력이 그렇다. 그런데 투자은행 인수라니, 말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