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4일

[글로벌명문가16] 스웨덴 157년금융名家 발렌베리가문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유럽의 재계 명문가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가문이 있다. 바로 스웨덴의 유태계 발렌베리 가문이다. 영국의 유태계 로스차일드가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너무나 유명한 금융가문이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로스차일드가문에 대해 송곳같은 기사를 쓰지만 발렌베리가문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발렌베리 가문 계보와 지배구조현황


발렌베리 가문이 유명세를 타고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여럿이다. 157년의 역사동안 사회의 지탄을 받을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특출한 인사를 많이 배출했다. 또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하면서 번돈으로 가문의 명예나 재력을 키우고 스웨덴 자체의 국부를 키우면서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고 있는 점이 다른 이유일 수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경영권을 둘러싼 골육상쟁없이 스웨덴 2위 은행인 SEB와 유럽 최대이자 세계 2위의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 에릭슨, 스웨덴 항공ㆍ방위산업체 사브, 중전기ㆍ산업장비 업체 ABB,광산ㆍ건설장비 아틀라스콥코 등 금융과 통신,기계와 의료,방위와 항공,건강과 IT 등 첨단 제조업 산업분야에서 19개 기업의 경영권을 직ㆍ간접으로 소유하고 있고 100여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덕분에 연간 1200억 파운드(미화 20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2012년 기준)의 37%,상장사 시가총액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스웨덴 인구의 4.5%에 이르는 40여만명을 고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25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업에만 치중하고 후손이 서로 등을 지며, 투자실패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비판을 받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1856년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SEB)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웨덴에서 발렌베리라는 성이 등장한 것은 1670년생인 헤르 한손이지만 발렌베리 가문이 시조를 삼고 있는 인물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인 오스카는 해군장교로 제대한뒤 은행업에 뛰어들어 1856년 설립한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을 설립했다.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은 지난달 5일자 FT인터뷰에서 "고조부는 상선 선원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다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항구에서 은행업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한다음 귀국해 은행을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오스카는 1886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장남 크누트가 SEB 최고경영자(CEO) 직을 승계했다. 그누트는 1907년부터 12년간 스웨덴의회 의원을 지내고 1914년부터 1917년까지는 외무장관도 역임한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는 1911년 CEO직을 동생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에게 넘기고 SEB 회장이 됐다

그는 1916년 스웨덴 정부가 은행의 산업자본 주식 소유를 제한하자 '인베스터(Investor)'라는 지주회사겸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많은 기업을 산하에 편입시켰다. 자식이 없던 그는 또 본인과 아내의 이름을 딴 '크누트앤앨리스 재단'을 설립해 부가 대물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마르쿠스 회장은 설명했다.

창업 3세대는 마르쿠스 시니어의 장남 야콥이 SEB CEO를 맡고, 동생 마르쿠스 주니어가 부 CEO가 되는 투톱 경영체제를 이어갔다. 1953년 경영에 합류한 4세대는 마르쿠스 주니어의 장남 마르크가 CEO직을 1958년 물려받았다. 그의 동생 피터는 야콥이 1969년 경영권 다툼으로 물러난뒤 이사로 등재됐다가 마르크가 1971년 자살하면서 CEO로 변신했다. 

피터는 또 큰 형의 아들이자 조카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현 SEB 회장을 대표자로 내세우고, 자기 아들 야콥 발렌베리를 또 한 사람의 후계자로 삼아 5세대 투톱 경영의 원칙을 살렸다. 마르쿠스와 야콥은 동갑네기로 각각 SEBㆍ일렉트로룩스ㆍ사브의 회장과 인베스터AB의 회장을 각각 맡아 가문을 이끌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 경영자는 아무나 되지 않는다.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복무해야 하며, 해외에서 유학한뒤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일하면서 국제 감각과 인맥을 쌓아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마르쿠스 회장도 스웨덴 해군사관학교와 미국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서 중위로 복무했다.그는 1980년 뉴욕의 시티뱅크 본사를 시작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시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또 발렌베리 가문은 기업 주식을 직접 소유하지 않는다.주식은 '인베스터'가 갖는다. 인베스터를 다시 '크누트 앤 앨리스 발렌베리 재단'과 '마리앤느 앤 마르쿠스 발렌베리 재단', '마르쿠스 앤 아말리아 발렌베리 재단' 등 발렌베리 가문이 설립한 3개 재단이 소유한다. 재단 이사회에 마르쿠스와 피터 등 가문 일원이 다수 참여해 지배력을 간접 행사한다. 발렌베리 재단은 3월 말 현재 인베스터 주식의 23.3%, 의결권의 50%를 갖고 있다. 인베스터에 대한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발렌베리가문은 사회환원도 많이 한다.기업들이 이익을 배당형태로 인베스터로 보내고 이 돈이 공익재단으로 흘러간다. 공익재단은 이 돈을 대학 교육이나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입한다. 마르쿠스 회장드 "발렌베리 재단은 연간 1억6000만 파운드(한화 약 2조7000억 원)을 기부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소유구조와 사회환원은 스웨덴 역사의 산물이다.발렌베리가문의 경제력 집중이 커지고, 노사분규가 극심해지자 스웨덴 정부와 스웨덴경영자연합(SAF)과, 스웨덴노동조합(LO) 등 3자는 1938년 샬트셰바덴 협약이라는 '노ㆍ사ㆍ정 대타협'을 체결했다. 오너 일가의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기업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회사 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마르쿠스 회장은 "차등의결권은 장기투자에 대한 약속"이라고 옹호했다. 그는 "우리는 아틀라스 캡코와 1800년대부터 거래를 하고 있으며, 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펄프회사인 스토라 엔소의 이사회에 등재돼 있다"고 소개했다.

발렌베리가문은 2007년 재단자산운용회사(FAM)를 설립해 재단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FAM은 재단과 인베스터, 그룹의 투자ㆍ경영의 컨트롤타워다.FAM 이사회에도 마르쿠스 발렌베리, 야콥 발렌베리 등 발렌베리 가문의 수장이 모두 소속해 있으니 발렌베리 가문은 재단과 기업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어 보인다. 

발렌베리 가문은 집안단속도 철저하다.공익재단근무와 그룹 경영자로서 급여를 받을 뿐이어서 재산규모가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1000대 부자는 물론이요, 스웨덴 100대 부자 명단에 끼지도 못했다.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esse, non videri)'는 가문의 철칙을 철저히 준수한다.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로 피한 잉그바르 캄프라드에 맹공을 퍼붓는 스웨덴에서조차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다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이것이 삼성그룹이 벤치마킹하려는 이유가 아닐까?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5101050087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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