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4일

인셉션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바타>를 처음 봤을 때, 우리는 그 가공할 비주얼에 입을 떡 벌리고 넋을 놓은 채 관람했었다. 그러나 <아바타>가 그 화려한 비주얼만큼이나 놀라웠던 점은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의 생태계에 대한 생물학적 구조를 마치 진짜인 것처럼 정교하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가만 따져보면 제임스 카메론은 이런 일에 참 소질이 있는 인물이다. 단순한 우주괴물이었던 <에일리언>이 그 생태계 구조를 확립하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에일리언2>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어느 정도 닮아있다. 제임스 카메론이 마치 창조자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조를 정교하게 구성했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누구나 가본 적은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무의식'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놀란 감독은 마치 프랑스 현대철학자처럼 꿈 속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영화 속에 풀어내고 있고, 그 영화가 바로 <인셉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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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타인의 무의식으로 침투해 잠재된 생각을 훔치는 탐정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한 갑부(와타나베 켄)의 권유로 생각을 심어놓는 행위, '인셉션'에 참여하게 된다. 시나리오 상으로 <인셉션>은 꿈에 대한 깊은 탐구를 벌이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가 '꿈'이라고 한다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라깡의 철학 등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뭐 복잡한 철학이 아닌 무의식의 상징이 열거된 기호학적 영화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인셉션>은 지금보다 좀 더 복잡해야 하지 않았나, 아마도 그랬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셉션>에서는 상징적 기호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꿈'에 대해 꽤 흥미롭게 설명하는 영화라면 아무래도 타셈 싱 감독의 <더 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는 좀 유치하긴 했지만 꿈 속 세계의 미학적, 상징적 표현은 나름 일품인 영화다. 물론 <더 셀>이 묘사하는 꿈 속 세계가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꿈이라는 것이 무의식의 상징적 표현이라면 좀 더 기호가 난무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꿈 속 세계가 정말 꿈이 아닌,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가상현실의 세계와 흡사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여러 사람이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로 여행을 가는 모양이 꼭 <매트릭스>와 유사하긴 하다.


 즉, 이 영화는 '무의식-가상현실'에 대한 구조적 완성을 이룩한 영화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무의식의 구조'에 대해 나름 신빙성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꿈이라는게 단계를 거쳐서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단계가 넘어가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수록 시간이 변환된다는 점은 가히 훌륭한 발상이다. 실제로 잠을 자다가 꿈을 꾸면 꿈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 흐른 것 같아도 깨고 보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인셉션>의 이 발상은 아마도 거기서 착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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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인셉션>은 세세한 부분에서 꿈의 구조를 정교하게 만들어낸다. 꿈속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조작해내는 능력이나 꿈 속 최후의 단계에 대한 묘사 또한 흥미롭고, 정교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설명이다. 꿈 속 단계를 마지막까지 들어가면 정신없는 액션으로 몰아붙이고 나서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느낄 때, 감독은 관객들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코브의 이 해피엔딩은 진실일까, 꿈일까?". 넘어질듯 계속 도는 팽이는 해피엔딩임에도 불구하고 뒷문이 찌릿한 불안함을 안겨준다.


이 불완전한 해피엔딩은 꿈과 현실사이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던 코브가 결국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물론 그곳은 꿈이건 현실이건 둘 중 한 곳일테지만 코브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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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과 현실사이에서 길을 잃은 코브의 최후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앞서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닮아있다고 설명했었다. <매트릭스>가 어떤 영화인가? 가상현실과 현재를 오가면서 인류를 구하는 대모험극이 아니던가? <인셉션>이 무의식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설정을 <매트릭스>에 대입해보면 가상현실과 진짜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상현실이란 다른 말로 현재사회의 발달된 미디어를 상징하기도 한다.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의식-대중문화의 관계는 '잠재된 욕망의 표현'으로 정의내릴 수도 있기에 이 점은 충분히 신빙성을 가질수도 있는 설명이다. 코브의 잠재된 욕망,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가장 완벽한 구조로 설명한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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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적으로 <인셉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오락영화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날로그 액션을 선호하는 놀란 감독답게 많은 장면에서 CG를 배제한 아날로그 액션을 선보인다. 개인적 취향으로 이 점은 아주 마음에 든다. 심지어 몇몇 장면은 "저게 아날로그로 가능해?"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거대하고 정교하다. 여기에 꿈의 단계가 깊어지면서 발생하는 시간단위의 변화를 묘사하는 초고속 촬영은 표현의 자유로움을 한 단계 확장시킨 성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에 초호화 캐스팅 또한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와타나베 켄, 엘렌 페이지, 조셉 고든 래빗, 마리온 꼬딜라르, 길리언 머피, 마이클 케인 등. <배트맨 비긴즈>부터 유독 초호화 캐스팅을 좋아하는 놀란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미국 여동생' 엘렌 페이지의 등장한 매우 반갑다. 화려한 출연진들의 출동에 불구하고 이들은 욕심부리지 않은 조화로운 연기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간다. <배트맨 비긴즈> 시절부터 유독 호화 출연진들이 많이 출연한 영화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들이 대체로 성공적인 걸로 봐서 놀란 감독은 배우 조율하는 재주도 탁월한 모양이다. 뭐 이런 천재감독이 다 있나...
<인셉션>은 정교한 구조와 흥미로운 발상이 바탕이 된 재미난 오락영화다. 경우에 따라 "복잡하다"며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지만 정신 바짝차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잘 쫓아간다면 이제까지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무의식의 구조에 대한 창조적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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