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4일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2)






"'론스타 문제', 공적자금 투입 못한 게 원죄다"


프레시안: 금융이 제대로 성장하려면, 결국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국은 약점이 많다. 특히 '론스타' 문제는 한국의 금융감독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이동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도록 인가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론스타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복잡한 감정이 있다. 외환은행 문제에는 원죄가 있다. 바로 공적자금 투입을 못한 게 원죄다. 2003년에 공적자금 2조 원만 있었어도 외환은행과 LG카드를 사서 정상화 시킨 후 정부가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투입할 공적자금이 없었다. 당시 실무진한테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양해각서(MOU)를 작성한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내가 한 첫 마디가 '이건 이정재 금감위원장이 정책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였다. 두 번째로 한 말은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이 인수하는 방법을 검토해보라'였다. 둘 중 하나, 특히 산은은 외환과 결합하면 완벽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실무진의 검토의견이 '적어도 정부가 5000억 원 이상은 재정확충을 해줘야 하는데, 조달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론스타에 줬다. 왜 굳이 사모펀드에 넘겼느냐고 비판하겠지. 당시 생각은 이랬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메이저 은행을 외국은행이 너무 많이 장악하는 게 큰 문제가 되리라고 봤다. 안 그래도 스탠다드차티드(SC), 씨티(Citibank) 이런 은행들이 속속 들어왔지 않은가. 그러니 '차라리 돈 왕창 벌고 나가더라도 펀드에 넘겼다가 국내에서 되사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했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남이 돈 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건 이차적인 이야기다. 가장 좋은 대안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국가에 이득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이게 두고두고 아쉽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못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외환은행 문제, 한나라당도 책임 있다"




 2002년 말에 한나라당이 워낙 거세게 공격해서 진념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적자금을 종료했다. 상환기금을 만들고 완전히 문을 닫았다. 당시 공적자금 상환 방안을 만든 게 나다. 금융연구원 사상 최대 규모의 작업이었다. 박사만 9명이 투입됐고, 회계법인 여러 곳이 동원됐다. 당시 재경부에서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만들어 달라며 연구원에 왔었다. 당시 연구원 측은 '공적자금을 완전히 닫으면 안 된다. 돈이 더 필요하다. 외환은행, 현대투자증권 등 몇 곳에 넣을 돈 2~3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내 일도 아닌데 재경부 쫓아다니고 기획예산처 찾아다니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았다. 정치적으로 안 된다는 거다. 야당과 공적자금을 닫기로 합의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내가 2003년 1월에 노무현 정권 인수위에 들어가서 하나 '빵' 터뜨렸다. 당시 <경향신문>이 1면 톱에 쓴 "공적자금 8조 원 필요해"라는 기사가 그렇게 나왔다. 그걸 보고 노 당선자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못했다.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던 게다. 그 뒤, 2003년 4월에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정재 당시 금감위원장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기자실에 가서 폭탄 하나 터뜨리겠습니다. 공적자금 8조 원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사표 쓰겠습니다. 그러면 4조 원은 안 만들어주겠습니까."


 공적자금 4조 원만 조달하면 김대중 정부 때 해결 못한 외환은행 문제, 새로 터진 카드문제 싹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온 사방이 적이었다. 당장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의 근간이 무너진다"며 결사반대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공적자금을 비정상적으로 빌려주는 걸 보니 굉장히 씁쓸했다. 2003년에 공적자금이 있었으면, 지금 이런 문제가 안 생겼을 텐데. 그래서 나는 외환은행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도 자유롭진 않다고 본다. 자신들을 마치 책임 없는 양 행세하는데, 무책임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깨끗이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공적자금 투입을) 닫아버려서 할 수 없이 생긴 부분이 있는데 말이다. 론스타와 관련해서, 주가조작 등 그 이후에 터진 사건들은 잘 모른다. 다만 내 의견을 말하라면 적격성 심사는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일단 금융감독당국이 인가해줬는데, 나중에 '안 된다'고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외환은행 문제는 조금 '쿨하게' 봤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 동안 론스타가 잘못한 걸 바로잡는 건 옳다. 그런데 그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배 아프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아쉽지만 깨끗이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다. 금융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약자는 손해 보고 강자가 돈 벌게 돼 있다. 법적으로 봐도, 론스타 관계자들을 감옥에 넣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만 끌면, 결국 론스타에게만 좋은 일이다. 그들이 3년 전에 나갔다면, 3조 원만 벌어서 나갔을 텐데, 시간 끌어서 5조 원을 벌게 됐다.


 돈은 아깝지만, 국내은행이 빨리 인수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안이 없다고 본다. 물론, 내가 이 사건 관련자이므로 어느 정도 '편향'이 있다는 것,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실력이 없어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준 것이라는 생각도 분명하다.


 안타깝기는 LG카드도 마찬가지다.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 이 문제 처리할 때 '개혁적 학자라더니 결국 관치하느냐'라는 욕을 참 많이도 들었다. LG카드 역시 자금만 투입하면, 회생 가능한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종합적인 판단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굉장히 아쉽다.






"'저축은행 부실, 지옥에 가서라도 물어내게 한다'더니, 그 약속 어디로…"






프레시안: 저축은행 부실이 심각하다. 결국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동걸: 그 동안 저축은행들이 한 일이 후순위채(발행기관이 파산했을 경우 가장 마지막에 투자금을 상환받을 권리를 가진 채권.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시 자본 계정으로 계상되기 때문에 재무제표를 왜곡시킨다)를 높은 금리로 발행해서 돈을 끌어온 후 더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짓이었다. 부실이 오래 전부터 생겼는데 오래 끌다가 더 커진 것이다. 정부가 건설경기를 부양하려고 저축은행에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다 이렇게 됐다. 구조조정은 지연한다고 좋은 게 아닌데 말이다. 정부가 대응책으로 은행권 공동계정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는 반대한다. 저축은행의 부담을 다른 은행에까지 전가시키는 것으로, 은행 예금자가 저축은행을 도와주는 꼴이다.


 저축은행에 사실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게 됐으니 공적자금 상환대책도 미리 만들 때가 됐다. 예금보험료만으로는 안 된다.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도 같은 이유로 공적자금을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저축은행 부실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물어내게끔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한다. 이래서야 되겠나. 지난해 말 저축은행 부실지원액이 7조 원이다. 이 중 다른 금융권에서 전용한 게 벌써 3조5000억 원이나 된다. 이번에 공동계정을 만들어 저축은행 문제를 푼다는 것은, 이걸 상환할 생각 없이 더 가져다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덮고 가면 안 된다. 공적자금을 제대로 투입하고, 이를 투명하게 감시해야 한다.




"미국 재무 장관 전화에 '예스, 서'라고만 한 강만수, 안타깝다"




프레시안: 기준금리가 2년 3개월 만에 3%로 올랐다. 한은 금통위의 결정을 어떻게 보나?


이동걸: 너무 늦게 올렸다. 2009년 여름부터, 늦어도 가을에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우리는 위기의 진원지가 아니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말이 많지만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공적자금을 투입한 덕분에 금융기관 건전성이 상당히 좋아졌다. 우리 기업체도 부실하지 않았다. 이게 미처 나빠지기 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뜯어보면 우리가 받은 충격은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뿐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버티기가 쉬웠다. 유동성을 늘리고 재정자금을 투입해서 경기를 부양했다.


 문제는 국내 문제가 아니었다. 외국의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금융연구원장을 지낼 때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얘기할 위치가 아니었지만, 주변에 내가 한 얘기가 딱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서 할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달러와 통화스왑하면 된다'는 거였다. 우리나라가 국제 기축통화라면 외환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달러가 빠져나가서 생기는 문제는 기축통화가 아니라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니 위기 때 원화를 일시적으로 달러처럼 쓰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의 외환보유고, 외환유동성에 문제가 안 생긴다.


 그런데 강만수 장관이 어떻게 했나. 2008년 페니메이(Fannie Mae, 미국의 국책 모기지 업체, 이게 무너진 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졌다)가 망했을 때, 헨리 폴슨 미국 재무부 장관이 세계 각국 경제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국채(T-Bond)를 팔지 말아달라는 전화였다. 강 장관도 받았다. 그런데 그가 곧장 한 말이 '예스, 서(Yes, Sir)'였다고 한다. 잘못된 대응이다. 당시 우리가 보유한 외환보유고가 2000억 달러가 넘었다. 이 가운데 반만 풀어도 국제금융시장이 뒤집어진다. 이런 힘을 배경으로 미국에 당장 통화스왑을 하자고 했어야 했다. 당시 미국으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니메이가 망하자마자 그렇게 했으면, 2009년부터 한국은 문제가 생길 게 없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기회를 놓치고 한참 기간을 끈 뒤에야 간신히 통화스왑을 했다. 그것도 구걸하다시피해서 말이다. 그때는 이미 미국이 유럽과 무제한적인 스왑을 체결한 상태였다. 한국을 비롯한 4개국만 맨 마지막에, 고작 400억 달러 수준으로 스왑을 맺었다. 때를 놓치는 바람에 외환위기가 길어졌다.




"때를 놓친 출구전략"…"한은 금통위원 3분의 1, 야당이 뽑자"




 그걸로 끝이었나. 아니다. 그 후 유동성을 엄청나게 늘리느라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가 됐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시기를 놓쳤다.


2009년 3분기가 경기 바닥이었다. 경기상승기에 선행해서, 기준금리를 끌어올렸어야 한다. 경제학의 기초공식(MV=PQ)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으로 통화량(M)이 늘어나는데도 경기가 나빠 화폐 유통속도(V)가 떨어지니까 경기가 나쁜 상황이었다. 총통화량(MV)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가 좋아지면 V가 굉장히 빨리 늘어난다. 그럼, 바로 인플레이션이 된다. (가격(P)이 오른다는 뜻)


 한마디로, 너무 풀린 유동성이 폭탄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미리 차단하지 못한 탓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에서 7% 수준으로 튀어 올랐다. 이렇게 과열되는 게 경제운용을 잘 한 건가? 빵점이다. 진작에 통화량만 제대로 흡수했어도 경기과열도 없었고 물가대란도 없었고, 당연히 경기운용이 훨씬 쉬웠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왜 때를 놓쳤을까. 실력이 없어서?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못한 거다. 통화금융당국이 정치적으로 변할 때, 독립성을 잃을 때 생기는 폐해를 우리가 지금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행을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그 사람들이 청와대 지시대로 움직이느라 금리 낮춰야 할 때 오히려 올려버리고, 올려야 할 때 낮추는 황당한 짓을 하도록 해선 안 된다. 한은 직원이면 대단한 엘리트 아닌가. 그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개혁할 때가 됐다. 그리고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김중수 총재가 져야 한다.






프레시안: 한은 개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동걸: 물론, 제도적 개혁이라는 게 정답은 없다. 다만 지금의 금융감독기구가 정부 눈치만 보고, 할 일은 안 하고 있으니, 금융감독기구를 한은 밑에 넣자는 게 내 생각이다. 금융 부문에 대한 모든 감독권한을 한은에 집중시키고, 한은을 집중적으로 감독하자는 것이다. 한은이 지금도 사실상 유동성을 조절하면서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부문까지 제어하고 있지 않은가. 안될 것도 없다고 본다.


이렇게 통화금융 및 감독 권한을 한은에 주고, 금통위원의 3분의 1은 야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야당 몫 금통위원도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일부를 야당이 지명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들 금통위원들이 국회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게 좋다. 어차피 한은이 정치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해결해서 집중 감시하는 게 옳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21180021&Section=02&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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