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4일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21180021&section=02&t1=n



 돈 앞에서 체면 따지는 사람은 없다. 이자를 0.1%라도 더 쳐주는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마음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게 세상의 원리라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인정한다. 이처럼 벌거벗은 욕망들이 알알이 모이고 부딪혀 거품 일으키며 흐르는 바다가 바로 '금융'이다. 아무런 가식 없는, 실용의 세계다.


 '금융'과 '선비'의 조합이 영 어색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벌거벗은 욕망을 그대로 인정하는 선비라니,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욕망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일수록 '선비'처럼 올곧은 심판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큰 돈이 오가는 거래일수록 규칙이 엄해야 하는 법. 그렇지 않으면, 타짜들이 날뛰고, 결국 판 자체가 깨진다.


무턱대고 '실용'만 쫓는 논리가, '실용' 그 자체를 위해서도 해로운 이유다. 한마디로, 금융에도 선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 선비 같은 금융인이 있다.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한갓 쓸데없는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왜곡된 '실용' 정신, 그러한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금융연구원을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원을 정부의 Think Tank(두뇌)가 아니라 Mouth Tank(입) 정도로 생각하는 현 정부에게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가 2009년 1월에 쓴 글이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이었고, 임기를 1년6개월 남긴 상태에서 갑작스레 사표를 냈다. 이 글은 당시 이 교수가 금융연구원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다.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왔던 그는 정부로부터 다양한 압력을 받았고, 결국 자기 발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당시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선비'를 떠올렸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모습이 딱 '선비'라는 게다. 그런데 그에겐 이런 일이 이게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8월에도 그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었다. 역시 자신의 소신 때문이다. 실용만 쫓는 이들에겐 '물 좋은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그의 모습이 그저 어리석게만 비칠 게다. 하지만, 이런 불합리한 행동이 우리 경제를 조금 더 합리적으로 돌아가게끔 해 왔다.


 묘한 것은 두 차례의 갑작스런 사퇴가 모두 삼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장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됐던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삼성 지배구조 문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대의 지분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금산분리 관련 규정은 이런 순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한다.


 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떠난 것도 삼성 문제 때문이다. 당시 금감위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부위원장이던 이 교수는 생명보험사 상장 이익에서 보험 계약자 몫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고객에게 소유권과 이익이 분배되는 회사)'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당시 금감위 안에서 소수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수파였다. 금감위 안에서는 계약자 대 주주 몫이 7 대 1 또는 8 대 1까지 거론됐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당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생명이 수년간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거액의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 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파악해 공개한 것이다.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이건희 회장 등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후손 몇몇에게 돌아갔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이 교수가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를 공론화하자, 주변 관료들 대부분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 교수는 "그 순간, 모든 사람이 내 적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자리를 떠났다. 생명보험사 상장 차익에서 보험 계약자의 몫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다. '7 대 1 또는 8 대 1'이 아니라 '0대 10'이 된 것이다.


 이를 놓고,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말까지 생명보험사 상품은 모두 배당보험이었는데, 배당보험은 생명보험사가 손해를 보면 보험 계약자가 배당을 덜 받게끔 돼 있다. 보험 계약자가 회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구조다. 일종의 '상호회사' 방식이다. 그런데 막상 상장이익이 생길 것 같으니 '회사는 주주의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과 정반대 편에 서서,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모두 주주에게 돌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고 있는, 바로 그 윤증현이다. 윤 장관 덕분에, 이건희 회장은 약 4조6000억 원의 상장차익을 얻게 됐다.


 윤 장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고위직을 맡았고, 이 교수는 두 정부에서 모두 중도 사퇴 이력을 남겼다. 윤 장관과 이 교수의 이런 대조적인 이력은, 적어도 재벌 문제만큼은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4일, 이 교수를 만났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만난 그는, 금융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또 과거 금감위 부위원장 시절의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측근부터 시작된 MB레임덕…'한탕'하고 탈출하려는 이들만 많다"




프레시안: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임명됐다. 현 정부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이보다 앞서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인 어윤대 씨가 KB금융지주 회장이 된 일도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다 자리에서 물러난 입장에선 할 말이 많을 듯 하다.


이동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됐다는 보도를 보고 '레임덕이 측근부터 시작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한탕 하고 탈출하자'라는 심리가 번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서 점점 불길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측근부터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강만수 씨는 금융 전문가가 아니다. 세제 전문가일 뿐이다. 오로지 충성심을 기준으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임명하는 일이 현 정부에서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다. 그는 노동정책 전문가에 가깝다. 물론 어느 정부나 다 이런 면이 있다. 내가 김대중 정부에서 1년, 노무현 정부에서 1년 반 동안 대통령을 지켜봤다. 결국 인사는 충성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게 너무 심하다.








"산은 민영화,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럿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산업은행과 관련해서는 쟁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민영화' 논란이다.


이동걸: 산은 민영화, 나는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 만약 정부가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산은 전체를 민영화하면 된다. 그런데 정책금융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정책금융공사를 새로 만든 것 아닌가. 정부는 경쟁력 있는 종합금융사 하나 더 만들겠다고 한다. 만약 정부가 종합금융그룹을 제대로 만들 자신이 있다면, 굳이 민간에 넘기지 말고 자기들이 계속 끌고 가면 된다. 왜 민영화를 하겠다는 건가. 정부의 방침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낙하산 자리 여러 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정부가 억지로 종합금융그룹을 만들려 하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선, 산은은 자생력이 없다. 지금까지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로 자금조달을 했지만, 민영화 이후엔 산금채 발행을 못한다. 그럼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건가. 은행이 자금을 구하는 통로는 전국에 깔려 있는 지점망이다. 그런데 산은은 지점망이 없다. 그래서 자생력이 없다는 게다. 그러니까 우체국금융이나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을 집어삼킬 궁리만 한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 자생력 없는 기관을 민영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이게 만약 성공한다면, 결국 정부가 특혜를 줬기 때문일 게다. 이런 민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 이동걸 한림대 교수 ⓒ프레시안


"메가뱅크 있어야 원전 수주?…60~70년대 발상일 뿐"


프레시안: 이른바 '메가뱅크(Mega Bank. 초대형 은행)'도 쟁점이다. 이번에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된 강만수 씨가 대표적인 메가뱅크 예찬론자다.


이동걸: 메가뱅크는 한마디로 1960~70년대식 발상이다. 과거에는 국내 은행들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어느 정도 커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다'라는 식의 주장이 먹혔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 은행들이 충분히 크다. 우리, 국민, 신한, 하나가 200조 원(약 1800억 달러)이 넘는 규모다. 이 정도면 미국에서도 7, 8위권이다. 미국에서도 1조 달러가 넘는 곳은 제이피모건(JP), 씨티, 웰스파고 등 네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 3000억~2000억 달러 수준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제경쟁력 없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되다. 경제 규모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10배가 넘는다. 한국에서 250조 원 은행이면, 미국에선 2500조 원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에도 2500조 원이 넘는 은행은 없다. 어떤 기준으로 보건, 규모가 작아서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힘들다. '메가뱅크' 주장이 나와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대형 은행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인된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내실이다.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고 진짜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 측근인 강만수 씨가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해 메가뱅크를 무리하게 추진할까봐 더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모든 게 굉장히 과감하다. 지금까지 제대로 해놓은 게 없기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대단해 보인다. 산은 민영화도 그래서 하는 것 아니겠나.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에게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고 했던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를 계기로 메가뱅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원전 수주와 관련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그 해법으로 국내은행간 인수합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세계적으로 자산순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은행이라고 해서 혼자서 국제자금 조달을 하는 곳은 없다. 신디케이트(공동판매회사)로 하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 모은 후 들어간다. 원전 수주 등 대형 사업에 필요한 자금 수주는 은행의 규모 문제가 아니다. 국제금융의 바닥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는 게 필요하다. 그게 없는 상태에서 덩치만 키우자는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리먼브라더스, 만약 인수했다면 결국 빈 책상만 남겼을 것"






프레시안: 정부 당국자들 역시 국제 금융계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쌓을 필요는 인식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중단됐지만, 현 정부 초기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하려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인수하면, 한국 금융계에 부족한 인맥과 노하우를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할 수 있다는 게다.


이동걸: 그래서 내가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을 금융 비전문가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 리먼브라더스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걸 우리가 인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리먼브라더스가 갖고 있는 인맥과 노하우가 우리의 것이 됐을까. 그래서 우리는 단숨에 국제금융계의 중요한 플레이어가 됐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의 인재들은 엄청나게 빨리 턴오버(Turnover, 인사교체) 된다. 우리가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한 뒤에, 세계경제가 조금만 살아나는 기미가 보였다면, 리먼브라더스의 인재들은 다른 곳으로 다 스카우트 돼 갔을 게다. 그러면 거액에 인수한 리먼브라더스에는 책상과 전화기만 남는다. 투자은행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이들은 이력서에 얼마나 직장을 여러 번 옮겼는지를 적는 게 자랑거리다. 실력 있는 사람은 한 곳에 일 년 반 이상 머물지 않는다. 이런 인재들을 끌고 갈 리더십이 있어야만, 투자은행을 경영할 수 있다.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은행(Commercial bank)은 장치산업"이라는 말이다. 은행은 지점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어야만, 운영이 된다. 그런데 그 지점이라는 건 제3자가 은행을 인수하더라도 철수시키기 어렵다. 영업 기반이 그대로 유지되고, 따라서 사람들도 그 기반을 따라 움직인다. 은행(Commercial bank)이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달리 스카우트가 적은 이유다. 씨티은행을 인수한다면 그곳의 지점망과 인재 대부분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투자은행은 다르다. 투자은행은 전부 팀 단위로 움직인다. 그 팀이 가진 네트워크에 따라 업무가 돌아간다. 이런 팀들을 제대로 이끌 능력이 없다면, 투자은행 인수는 헛일이다. 그리고 지금 수준에서 한국이 투자은행을 인수해서 세계 금융의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명백한 증거가 일본이다. 일본이 돈이 없어서 투자은행을 못하나. 아니다.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안 되는 것이다. 20~30년을 투자하고도 미국계 유대인이 중심인 국제 금융의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회사 하나 인수한다고 되겠나.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이 정부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국내 금융을 굳이 해외로 진출시키고 싶다면, 우선 은행을 인수하는 게 낫다. 그 다음이 보험이다. 그 뒤에나 고려해 볼만한 게 투자은행이다. 그나마 KB금융은 카자흐스탄 은행 인수했다가도 손들고 나오지 않았나. 국내 금융계의 실력이 그렇다. 그런데 투자은행 인수라니,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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