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4일

"이건희를 건드리니, 주변이 온통 적이 됐다" (3)




"마지막 보루는 결국 재정 건전성…감세 후유증이 두렵다"


프레시안: 기준금리와 맞물린 문제가 가계부채다. 지금처럼 늘어난 가계부채는, 설령 현 정부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다.


이동걸: 가계부채가 아직 국가 경제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잠재적으로 상당수 부실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소형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저축은행 한두 곳이 넘어간다고 망할 수준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를 단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게끔 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리고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계부채 자체만으로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이게 재정건전성 문제와 겹치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언제나 마지막 보루는 재정 건전성이다. 1998년, 김태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일할 때다. 당시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라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외국 투자자들이 청와대로 왔다. 당시 그들에게 투자유치를 할 때마다 우리가 한 얘기가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을 보시오. 공적자금 집어넣어서라도 당신들이 손해 안 보도록 하겠습니다'였다. 그 말 한마디면 다들 '오케이' 했다. 재정 건전성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지금, 재정 건전성이 아주 좋다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게 터져도 해결이 가능하다. 공적자금을 넣거나, 세금을 투입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사정이 점차 안 좋아지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는 기업부실이 문제였고, 이게 해결되고 나니 가계부채로 전이됐다. 여기에 다음 정부는 과잉 부채 문제까지 짊어지게 된 형국이다.


 기준금리를 제때 올리지 않아서 가계부채가 너무 늘어난 것, 또 현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으로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진 것 등이 서로 결합하면, 분명히 위험해진다.










'젊은 대기업'이 계속 생기는 미국 vs '젊은 기업'은 클 수 없는 한국


프레시안: 현 정부가 고집한 '저금리' 기조와 짝을 이루는 게 '고환율' 기조다. 이런 기조가 물가에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많다. 또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고환율을 유지위해 시장개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동걸: 미국 내부 문제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오르는 건 불가피하다. 그런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이 계속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면서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상태인데도 고환율이 유지된다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고환율로 수출 경쟁력이 유지 되나. 이것도 따져봐야 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대기업만 배불리고, 중소기업과 서민은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기업은 이제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때가 됐다. 어차피 지금도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대부분 대기업이 혜택을 누리게끔 돼 있지 않은가.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정부가 챙겨줄 필요는 없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목록을 보면, 창업주 당대에 이 리스트에 들어온 미국 기업이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등 5~60곳이 넘는다. 이게 미국의 경쟁력이다. 반면, 한국은 새로 창업한 기업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어느 수준 이상은 크질 못한다. 전부 재벌이 쌓아놓은 기득권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또 원화 평가절상을 해야 해외투자에도 좋다. 이 부분까지 염두에 두면 무작정 고환율을 고집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 한다. 이게 '법치국가'인가?"






프레시안: 공직에 있을 때 금산분리 완화, 생명보험사 상장 등 삼성과 관련된 쟁점에 많이 개입했다. 그러다가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이동걸 : 금산분리 원칙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선 워낙 말을 많이 했다. 이젠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거느리면, 시장경제가 왜곡된다. 평가받는 쪽이 재벌이다. 반대로 평가하는 쪽이 금융기관이다. '평가받는 쪽'이 '평가하는 쪽'을 인수하는 게 선수가 심판을 매수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몹시 해롭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감위 부위원장 직을 사퇴한 것은 구체적으로 삼성생명의 변칙적인 회계처리 때문이었다. 삼성생명이 보험감독 규정을 어기고 투자유가증권 평가이익을 주주몫으로 계상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를 제기하자, 주변 사람 대부분이 내 적이 됐다. 그래서 결국 자리를 떠났다.


삼성생명 상장 문제를 놓고도 대립이 있었다. 나는 생명보험사 상장 기준 문제가 노무현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본다. 이는 결국 생명보험사가 상호회사냐 주식회사냐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은 생명보험사를 주식회사로 시작했음에도 김영삼 정부 때까지 사실상 상호회사처럼 운용해 왔다. 김영삼 정부는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지는 대신 그들의 몫도 인정받는다고 이야기했었다. 생명보험사가 상장하면, 계약자에게 상장차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다. 계약자들이 실제로 부담을 짊어졌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명보험사는 주식회사이므로 상장차익은 오로지 주주에게만 나눠져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마치 상호회사처럼 보험 계약자가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던 김영삼 정부나, 주식회사이므로 보험 계약자에게 돌아갈 상장 차익은 없다던 노무현 정부 가운데 하나는 국민에게 사기를 친 셈이 된다.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보험 계약자들만 억울하게 됐다. 이런 역사를 경제부처에서 오래 일했던 관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생명보험사 상장차익을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이런 역사를 알기 때문이었다. 윤증현 장관이라고 해서 김영삼 정부 시절 보험 계약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윤 장관은 과거 일은 전혀 모른다는 듯, 상장차익에서 보험계약자 몫을 싹 무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삼성생명 주주들은 횡재를 했고 보험계약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윤증현 장관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했는지, 그리고 윤 장관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말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설령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법과 제도를 신뢰할 리가 없다.


그런데 삼성생명 상장 문제나 저축은행 공동계정 문제를 보면, 예전에는 '아'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어'하는 형국이다. 이게 과연 법치국가인가 싶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321180021&Section=02&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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